마카이 박사는 1872 년 3 월 9 일 후웨이에서 상륙한 후 주민들에게 무료 투약과
치료를 해주었으며 같은 해 6 월부터는 수술치료도 개시하는 한편 병상을
마련하고 간호 작업까지 진행하였습니다. 서양 약물 치료 효과와 마카이 박사의
열정으로 인해 찾아오는 환자들이 날로 늘어나 첫 해에 총 1,023 명의 환자를
치료하였고 이듬해 5 월에는 따로 민가를 빌려 <후웨이 의관(滬尾醫館)>이란
진료소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마카이 박사가 단수이에서 진행하는 의료 봉사 경비의 출처는 대부분 외국인
양행에서 출연하였고 현지 세도가들의 기부도 다소 있었습니다. 1879 년, 미국의
종씨인 마카이 선장의 미망인이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해 미화 2,500 불을 새
의료원의 건축 비용으로 기부함에 따라 마카이 박사는 현 위치에 의관을
신축하게 되었는데 같은해 9 월 14 일 낙성되어 마카이 선장 부부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이름하여 <후웨이카이 의관>이라 하였으며, 카이 의관은 개관
초기에 이미 병력 관리를 하였고 병리도 연구하여 의학 문헌 보존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1884 년 8 월 5 일, 청불전쟁이 발발하자 마카이 박사는 카이 의관에서 수많은
부상병들을 치료하였고 청나라 료우밍촨(劉銘傳)장군은 이를 특별히
포상하였습니다. 1901 년 6 월 2 일 마카이 박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의관에서의
진료도 중단되었는데 캐나다 퍼거슨(Dr. J.Y. Ferguson, 宋雅各)의사가
1906 년에 타이완에 도착하면서 의료관을 재개하고 의료 봉사를 계속하다가
1912 년 진료소를 타이베이 중산북로(台北市 中山北路)로 이전하고 마카이
박사의 타이완에 대한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카이
기념병원(馬偕紀念醫院)>으로 개정하였습니다.
후웨이카이 의관은 마카이 박사가 소박한 민남(閩南) 민가 양식에 서양식 문과
창문을 직접 설계한 특별한 건축 양식입니다. 지금도 후웨이카이 의관에는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안에는 수술대, 벽난로, 초인종 등 설비와
마카이 박사가 당시 썼던 풍금, 서양식 테이블, 철재 침대와 의료용으로 사용했던
약병 등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단수이 교회에서 본래의 카이 의관을 개축하여 문물전시관과 레저
커피숍을 겸한 장소가 되었으며, 사전 예약을 할 경우 자원봉사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쉬고 싶을 때에는 커피숍에서 간단한 음료와 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수제 ‘마카이 쿠키’도 함께 드실 것을 추천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