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선교사 마카이(George Leslie Mackay,馬偕) 박사는 타이완해협의 거센
풍랑의 위협을 무릅쓰고 1872 년 3 월 9 일 오후 3 시경에 “해룡호(海龍號)”선을
이용해 단수이(淡水)에 도착하였습니다. 조기에는 “후웨이(滬尾)”라 불리워졌던
단수이(淡水)는 자고로 타이완 북부의 우량 항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마카이 박사가 상륙한 지점은 오늘날의 단수이우체국 뒤 강변으로, 당시 이곳은
선박의 왕래가 매우 빈번했던 선착장으로, 가까운 곳에 영국 양행 소속의
선박회사가 있어 홍콩(香港),가오슝(高雄),타이난(台南),단수이(淡水)와
아모이(廈門, 샤먼) 간을 정기 운항하였던 중요 해운 허브였습니다.
아름다운 단수이에 도착한 마카이는 주변 환경에 매료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북쪽으로 또 남쪽으로 그리고 섬 안쪽으로 바라보면서 내심 만족과 평온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바로 이곳이다! (‘This is the land!’)’란 말을 또렷이
들었던 것 같았다고 하며 그는 일기에 그 감동적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름다운 단수이(淡水),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나는
기쁨에 벅차 손뼉 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수이를 선교와 의료 및 교육의
기지로 삼을 것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007 년 12 월 27 일, 신베이시(新北市, 2010 년 12 월 25 일 이전의 명칭은
台北縣임)정부는 마카이의 타이완에 이바지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마카이 박사가
당시 상륙했던 지점에 동상을 수립하고 제막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당일 오후
3 시경에 3 명의 무용수가 삼판배를 타고 상륙하면서 입장한 후 힘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몸 동작으로 마카이 박사의 단수이 주민과 토지에 대한 사랑과
타이완에 일생을 바친 돈독한 우의의 감명 깊은 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날
타이베이 현장(台北縣長) 저우시웨이(周錫瑋)는 마카이 박사를 상징하는 무용수의
손을 잡으며 타이완 국민들의 마카이 박사가 국경을 넘어선 사랑을 베푼 데 대한
사의를 표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마카이 동상은 타이베이예술대학교 미술학과 왕즈웬(王志文)
교수의 작품으로 마카이 박사가 단수이를 향해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조각한
것입니다. 마카이 박사가 겸허하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랑과 의지력으로
충만한 그의 일생을 타이완에 봉사하겠다는 축복을 담은 예술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