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이 박사가 처음 단수이에 도착했을 때, 당시 영국 영사와 영국 상인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단수이 교회 옆 마카이지에(馬偕街)24 호 뒤 비탈진 곳의
월세 15 원(당시 통화)으로 지주 첸아순(陳阿順)에게서 세를 얻어 살았습니다.
여기는 본래 청나라 제독(提督) 순카이화(孫開華)의 마구간이어서 집이 몹시 낡고
초라할 뿐 아니라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어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 곳이었지만
마카이 박사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열심히 정리했으며, 1876 년
파오타이푸(砲台埔)의 신축 숙사 공사가 완성되어 이사 가기 전까지 이곳을
거주지로 쓰는 한편 전도와 교육과 의료의 기지로 삼았었습니다.
1872 년 4 월 13 일자 마카이 박사 일기에는 ‘세 든 집에 들어와 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소나무 상자 2 개 외에 별다른 게 없다. 난 침대도 의자도 책상도
없다. 하지만, 오~ 난 나의 작은 집이 있다, 자유롭지 않은 호화 주택에서 사는 것
보다 좋으리라. 내 생예에 지금보다 더 기쁜 순간은 없을 것이다.’라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마구간을 고처 만든 초라한 거소에 대해서도 그는 흔연하게
받아들이고 만족하였음을 입증한 것이라 더욱이 마카이 박사의 검소하고 소박한
처신에 탐복하게 합니다.
청나라 시기에 이곳은 원래 ‘롱무징(龍目井)’이라 불리웠는데 나중에 마카이
박사의 타이완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인근 도로를 <마카이지에(馬偕街)>라
이름하였습니다. 현재 볼 수 있는 건물은 오랜 시간이 흘러 옛모습이 아니지만
마카이 박사의 헌신적인 봉사 뒤에 숨겨진 고달픔을 다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