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이 박사가 초기에 빌려 살던 셋집은 전도, 의료와 교육의 근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민풍은 배외적이어서 방해하고 다그치는 행동이 끊이지
않아 선교 활동이 매우 험난하였었습니다. 다행히, 마카이 박사의 강한 의지력과
주민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에 힘입어 점진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1873 년 2 월 9 일, 처음으로 5 명의 교인들이 세례를 받은 후 그 다음 주일에
성찬예배식을 진행하여 단수이 기독교 장로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교회
신도들이 날로 늘어나자 마카이 박사는 1890 년경 의관 서쪽에 첸아순(陳阿順)
소유의 양옥집을 매입하여 단수이 첫번째 예배당으로 리모델링하였는데 이전에는
세를 들어 예배장소로 사용했었습니다.
그후, 교회 발전 수요에 따라 2 차례의 예배당 개축을 진행하였습니다. 첫번째는
1915 년에 개축한 ‘하얀 예배당’이라 불리는 북아메리카 양식의 회백색 벽돌
건축으로 종탑은 정문 위에 진 것입니다.
두번째 개축한 것은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예배당인데 마카이 박사의 타이완
선교 60 주년을 기념하여 건설한 것입니다. 경비의 출처는 신도들과 각 교회의
헌금 외에 대부분은 마카이 박사의 아들 조지 윌리엄 마카이(George William
Mackay)가 캐나다 본교회에 신청하여 받은 보조금이며, 조지 윌리엄이 이번
개축의 설계 및 공사 감독을 직접 맡아 1932 년도에 시공하여 1933 년 9 월 3 일에
준공된 것입니다.
교회당 외관은 고딕양식의 첨탑이 있고 이물질을 씻어낸 벽돌로 벽을 쌓았으며
지붕은 큰 폭의 튼튼한 철근 구조입니다. 교회당 내부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있고 정면에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그림이 있으며,
종탑은 <오병이어>와 <켓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를 배경으로 하였습니다.
당시, 이곳에서는 단수이 부두를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예배당 종소리는 강건너
맞은편 바리(八里)에까지 울려 퍼져 완연 타이완 북부지역의 복음 전파
발상지라는 기세를 보여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