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타이완 주민들은 <여자는 재능이 없는 게 덕이다>라는 관념 때문에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약하였고 밖에 나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한족(漢族) 여성 또한
매우 적었습니다.
마카이 박사는 옥스포드학당(Oxford, 牛津學堂)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여성의
교육을 추진하였습니다. 마카이 박사는 1881 년에 캐나다로 돌아가 타이완에서의
여자학교 설립에 관해 선전한 결과 캐나다 장로교회 본회는 미화 3,000 달러의
기부금을 제공하며 지원해 주었습니다. 수년 간의 노력 끝에 1884 년 1 월 19 일
여학당 건물이 낙성되어 3 월 3 일에 당시 영국 영사의 주재로 개학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여학당(女學堂)은 타이완 북부의 첫번째 여자학교로 개교 초기의
학생은 45 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이란(宜蘭)의 갈마란 평포족(噶瑪蘭 平埔族)
원주민이었습니다. 당시 학비와 잡비를 면제해 줬고 숙식과 의복 등을 제공해
주었었는데 학생 수는 최고 80 명에 달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빨간벽돌 건물은 초목이 울창한 교정 내에 위치하며 수도원처럼
기숙학교 운영 방식을 채택하여 여성에게는 매우 좋은 교육 환경이었습니다.
이곳은 과거에 순더(純德)유치원 용지로 사용되었었습니다.
마카이 박사는 직접 여자학당 건설을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하였으며 그는 또
우물을 파 여학당과 부근 농가 주민 그리고 기타 선교사와 외국 교민들과
공유하였는데, 단쟝중학교(淡江中學) 여자기숙사 뒤에 위치해 있는 그 우물에서는
아직까지도 물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며 옥스포드학당(牛津學堂)과 더불어
단수이의 고적이기도 합니다.
1907 년, 교회에서 새롭게 개설한 여자학교는 <부학당(婦學堂)>이라 불리웠고
<단수이 여학당>의 기능을 한층 넓혀 부녀 교육과 여성 선교사 훈련을
제공하였습니다. 학생은 자녀를 동반하여 기숙할 수 있어서 타이완 최초의
‘어머니교실’이라 하겠습니다.###